다이빙벨(Diving Bell)은 진정 우리를 구원할 수 있었을까?

우리 대한민국! 다이나믹 코리아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온 국민을 전문가로 만든다. 이번에 떨어진 떡밥은 이름하여 “다이빙벨(Diving Bell)”이라는 산업잠수용 특수장치. 이미 많은 정보가 알려졌지만, 오해 또한 만만치 않아 다이빙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글을 써보려고 한다.

먼저 글쓴이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콜롬비아 카리브해에서 사기를 당해 자격증이 안 나온 관계로 인도네시아에서 교육과정을 한 번 더 밟았던 비운의 PADI 다이브마스터(Divemaster) 정도로 보아주시면 되겠다. 두 번이나 마스터 과정을 거친 만큼 이론과 실기 나름 빡세게 배웠으니 이제부터 쉽게쉽게 설명을 해드리겠다.

참고로 PADI(Professional Association of Diving Instructors)는 레크리에이션 다이빙 계열의 세계최대 단체이며, 다이빙벨이 사용되는 수준의 특수잠수/산업잠수 쪽과는 무관하다. 하지만 다이빙의 기초적인 이론과 실기는 100% 같으므로 글쓴이의 지식을 총동원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분들의 정보를 참고해서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특수/산업잠수는 대형항공기 조종, PADI/SSI 등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은 경비행기 조종 정도로 차이난다고 보시면 되겠다.

잠수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압병의 위험은 커진다

다이빙에 대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감압병(decompression sickness)이다. 조금 어려운 부분인데 여길 이해하고 넘어가야 “왜 다이빙벨이 아니면 세월호 생존자를 구조할 수 없었는지”가 설명되니 주의깊게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아래의 사진은 ‘보일의 법칙(Boyle’s Law)’이라는 스쿠버다이빙의 기초지식을 설명한 것이다.

보일의 법칙
(이미지 출처)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깊이 잠수할수록 주변부의 압력(수압)에 의해 ‘공기의 부피(volume)는 감소 혹은 압축(compressed)’되고, ‘공기의 밀도(density)는 증가’한다.

다음 그림을 보신다면 더 쉽게 이해가 되실 것이다. 빈 페트병 하나를 들고 잠수하면 사진과 같이 공기의 부피가 감소하며, 수면으로 상승하면 원래의 부피로 돌아오게 된다.

공기 부피의 감소로 찌그러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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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78% 질소와 21% 산소, 기타 1%로 구성되어 있다. 스쿠버다이빙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체가 바로 공기1 인데, 사람이 기도(氣道: airway)를 통해 들이마시고 내뱉는 부피는 일정하므로 수심 10m 지점에서 잠수하고 있다면 평상시 2배 밀도 즉 두 배의 공기를 흡입하는 셈이 된다. 20m에서는 3배, 30m에서는 4배로 많은 수준이다.

평상시에 폐를 통한 호흡으로 배출되는 질소는 깊은 수심에서 과다하게 흡입될 때 혈액 속에 녹아들어갔다가 상승할 때 압력의 변화(감압: decompression)에 의해 다시 커지는데, 이런 질소방울이 신체 각 부분의 혈관을 막아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

감압병의 예시
(이미지 출처)

이것이 바로 감압병(decompression sickness)이다. 급격히 커진 질소방울이 관절부를 막으면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뇌혈관을 막으면 영구적인 뇌손상을 입을 수도 있고, 심장쪽을 막으면 혈액순환이 안 되어 즉사할 수도 있다.

아래 사진처럼 물속에서 다이버가 내뿜은 공기방울은 상승하면서 커지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인간의 체내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실 것이다.

수면으로 상승하면서 커지는 공기방울
(이미지 출처)

다이빙벨이 아니면 세월호 생존자를 구할 수 없었던 이유

이제 감압병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해하셨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세월호에 에어포켓이 존재했고2 그 속에 생존자가 있었다면 어떻게 구출할 수 있을까?

감압병을 피하는 방법은 체내에 질소를 과다하게 축적하지 않거나3, 체내에 쌓인 질소가 몸에 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상승하면서 호흡을 통해 배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12리터 짜리 스쿠버다이빙용 공기탱크를 장착하고 수심 30m까지 내려가면서 감압병의 위험 없이 안전하게 다이빙하려면, 실제로 상승과 하강을 제외하고 30m 지점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0~15분 정도라고 봐야한다. 천천히 상승하면서 몸 안에 축적된 질소를 빼내는 감압상승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이빙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압상승시간을 늘려야 감압병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데, 탱크 안의 공기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한정 천천히 상승할 수도 없다.4

세월호에 생존자가 있었다면, 에어포켓 속의 공기는 이미 주변의 압력으로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잠수사가 수중에서 호흡하는 것과 동일하게 몸 안에 질소가 축적된다.

30m에서 10~15분 정도 머물렀다가 상승할 때도 최저 10분 정도의 감압상승(수심 5m 안전정지 3분 포함) 시간이 필요한데, 세월호 안에서 24시간, 48시간, 72시간 등 에어포켓 안의 공기를 흡입하면서 기다린 사람의 체내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질소가 쌓이게 될까? 그리고 그 질소들을 빼내려면 얼마나 천천히 감압상승을 해야할까?

잠수부가 수색중 배 안의 생존자를 발견했다면, 본부에 보고해서 구조를 준비시키고 물안경 하나 더 가져와 생존자에게 간단히 호흡기를 물고 숨 쉬는 법을 가르쳐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 5

그러나 이때 생존자의 체내에는 일반 다이빙 시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질소가 쌓여있기 때문에, 수면까지 바로 데리고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도하게 축적된 질소방울이 커져 혈관을 차례차례 막아 감압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

바로 이때 다이빙벨이 필요하다. 생존자를 일단 다이빙벨 안에 넣어서 감압병 없이 수면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몇 시간’ 이상에 걸쳐 천천히 상승해야 한다. 사고 후 구조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에 따라 감압스케줄을 참고하여 생명에 지장이 없는 수준에서 상승하고, 물 밖으로 나오면 바로 감압챔버(Decompression Chamber)6 에 넣어 추가적으로 질소를 빼내야만 완전한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

이종인_다이빙벨
(이미지출처)

위의 사진은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가 직접 만든 다이빙벨의 내부. 3인실이라 생존자가 실내에 탑승하여 저체온증의 위험없이 천천히 감압상승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다이빙벨은 세월호 사고 직후의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해서 반드시 투입되어야만 하는 장비”였다.

다이빙벨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월호 생존자를 발견했다면? 과연 무슨 방법으로 생존자를 그 찬물 속에서 몇 시간 동안 감압상승하면서 호흡시킬 수 있을까?

진정 단 한 명의 구조도 불가능했을까?

일본방송에서 언급된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구조장비’ 중에는 다이빙벨과 더불어 수중재호흡기(rebreather)도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이 호흡한 공기를 재활용하여 수중에서 감압병의 위험없이 장시간 활동할 수 있는 잠수장비이다. http://en.wikipedia.org/wiki/Rebreather

수중 재호흡기를 이용하는 다이버의 모습
(이미지 출처)

미해군의 재호흡기를 장착한 수중폭발물 처리반의 모습
(이미지 출처)

일반 스쿠버다이빙 방식은 공기통 용량의 제한과 감압병의 위험으로 실제 구조작업은 10~15분 밖에 할 수 없으며 무한정 호흡이 가능한 후까(hookah)방식은 공기호스의 길이제한이나 꼬임현상 등의 위험이 있지만, 재호흡기를 사용하는 잠수사는 수시간 동안 독자적으로 잠수할 수 있어 구조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각 나라별로 해군특수부대들이 재호흡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해군에서도 당연히 재호흡기 장비와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http://www.tdisdi.co.kr/community/board_view.htm?no=229&p_idx=40

개인적으로는 다음 기사에서 나오는 해군의 최정예 19명이 수중재호흡기 전문요원이 아니었을까 추측되며, 사고 초기에 이들이 투입되는 것을 해경이 막았다고 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4301722411&code=940202

세월호 침몰 직후 장시간 활동 가능한 재호흡기 다이버가 배 안의 생존자를 찾아 구조본부에 연락하고, 일반 다이버가 생존자를 위한 보조호흡기와 마스크를 준비해 구출하고, 다이빙벨에 생존자를 넣고 서서히 감압상승한 이후 수면으로 올라오면 감압챔버에 옮기는 – 이것이 이상적인 세월호 사고 초기의 구조 프로세스가 아니었을까.

읽는 분들을 고려해 가볍게 쓰려고 노력한 글이지만 글쓴이의 마음은 전혀 가볍지가 않다. ‘세월호 사고 후 구조자 0명’이라는건 어떠한 핑계를 대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장비도 있고 기술과 인력도 충분했는데, 기득권 싸움으로 인해 구조 자체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또한, 구조에 동참하려던 여러가지 노력들이 지나치게 이슈화 되면서 본질이 가려진 듯한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나 의심도 있을 수 있지만 선의 그 자체는 그와 별도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되겠지만, 불가피한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책임감을 느낄 수 있고 투명한 정부의 구조노력’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세월호 사고로 운명하신 분들과 유가족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1. 많은 사람들이 ‘산소’로 잘못 알고 있는데, 잠수시에 100% 산소를 호흡한다면 독성 때문에 위험할 뿐더러 보통의 공기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잠수비용도 감당하기 힘들다.
  2. 세월호 침몰 초기에 에어포켓이 있었다는건 확실하다. 초기에 수습된 시신중 부검결과 저체온증이 있었으니까. 익사가 아니라 추워서 사망했다는 이야기.
  3. 잠수시간을 조정하고 깊은 수심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등 전체적인 플랜에 따라 다이빙하여 감압병을 예방할 수 있다.
  4. 다이빙벨은 공기튜브를 통해 수면으로부터 공기를 무제한 공급받아 감압상승시간을 대폭 늘일 수 있다.
  5. 김어준의 KFC 6화 이종인 대표의 인터뷰 참조:
  6. 감압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기압을 조절할 수 있는 캡슐형 의료장치. 수심 깊은 곳과 같은 기압상태를 만들어 혈관을 막고 있는 질소방울을 다시 작게 만들고, 서서히 정상기압으로 복귀하면서 체내의 질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돕는다.
  7. Takano Yoshiya 라는 다이빙 전문가가 Miyaneya NTV에서 발언한 내용. 다음과 같은 이유인지 원본 방송을 찾을 수 없었다:

20 comments On 다이빙벨(Diving Bell)은 진정 우리를 구원할 수 있었을까?

  • 이상적으로 생존자 구하는 시나리오는 위에 언급하신 다이빙벨이 해군의 PTC일 때겠죠. 이때는 바로 선내 챔버로 이동가능할테니까. 하지만, 이종인씨의 벨과 같은 wet bell 형태의 경우, 생존자 발견한다고 해도 몇시간씩 바다에 일부 노출된 채로 그 안에서 감압하기가 쉽지 않죠. 게다가 본디 유속이 강한 곳에서 쓰지 않는 것이기에, 추를 달았다고 해도 그것이 수시간동안 100%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아마 혹자는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지 않냐고 할테지만, 해군이 만약 생존자를 진짜로 발견했었다면 설마 요구호자에게 호흡기 물리고 바다에 노출된 채로 감압시켜서 구조하지는 않았을테고, 아마도 PTC를 가지고 있던 청해진함을 불러서 어떻게든 그때부터 넣었겠죠.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 수온에서 생존가능 시간은 하루, 이틀이였던 것 같긴 합니다만…

    • 저 또한 Closed Bell 타입이 Wet Bell 보다 생존자 구출에 더욱 유리할 것으로 봅니다만, 알려진 바와 같이 감압챔버를 지닌 누리안호도 해경이 작전투입되는 것을 막아 5일 동안 쓰레기만 치우다 돌아갔다고 하죠.

      강대영 잠수사와 같은 분의 인터뷰를 보면 사고당일에 조류는 세지 않았다, 가이드라인 설치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라는 증언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해군의 PTC와 같이 Closed Bell이라면 실내에 공급하는 기체를 조절하여 자체감압도 할 수 있고 생존자가 찬물에 닿을 필요가 없어 무사생환 확률이 더욱 높아지겠지만, 현장에 준비조자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조에 필요한 장비는 현장에 배치해 놓고 상황에 따라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는게 옳은건데, 말씀하신 바와 같이 생존가능시간을 초반에 다 날리고 아무런 준비도 안하니 오죽하면 민간장비까지 이슈가 되어서 들어갔었겠습니까.

      실제로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이 현장에 들어갔던 것으로 증명되다시피, 무조건 진도 현장에서 다이빙벨은 쓸 수 없다는 말은 틀립니다. 대조기 소조기의 차이 등 투입할 수 없는 때와 마찬가지로 투입할 수 있는 때도 존재합니다.

      현장에는 언제든 생존자가 발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다이빙벨이 준비되어 있었어야 했습니다. (해군의 것이던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이던 극초반에 재호흡기 다이버와 팀을 이뤄서 작업했으면 분명 생존자 구출에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다시 한 번 구조본부는 생존자 단 한 명이라도 구조할 의지가 있었는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 같은 현상이 반복되어 댓글을 3차례 남겼지만, 제대로 올라간 것 같지도 않고…
    댓글 수정, 삭제 기능도 보이질 않아 난감하군요;
    이건 잘 올라갈려나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중복해서 3개의 댓글이 보이신다면, 관리자 권한으로 중복인 부분 삭제하시면 되겠습니다.

    • 스팸방지가 작동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트위터/페이스북/워드프레스/구글 등으로 로그인해서 댓글을 남기시면 바로 등록되고 수정 삭제도 가능해지는 듯 합니다.

  •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Your comment is awaiting moderation.” 라는 메세지가 뜨고
    댓글이 제대로 안 달린 것 같더군요.
    댓글을 나눠서 달아보겠습니다…. 댓글 수정, 삭제 기능이 없어서 좀 난감하군요.

    구조본부가 구조할 의지가 있었는가 의문이 든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냥 손놓고 포기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근데 벨을 쓰든 후까를 쓰든 머구리를 쓰든 일단은 고정하고 가이드라인부터 설치를 해야 할텐데, 그때는 스쿠버를 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조류와 파도가 세니까 첫날은 제대로 안돼고 시간이 흘러가니 현실적으로 생존가능시간이 넘었다보고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헌데, 글쓴님께서는 강대영씨의 인터뷰에서,”사고당일에 조류는 세지 않았다, 가이드라인 설치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라고 하시는데, 제가 알고 있기로는 사고 당일 조류와 파도가 셌기에 힘들었다고 알고있고, 제가 본 인터뷰는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472529 이것이였으나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없기에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다른 인터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 소개해주신 링크글 자체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앵커]

      그 당시 조류가 굉장히 빨랐다고 해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던 상황은 아니였습니까?

      [강대영/잠수부 : 그건 절대 아니였습니다. 작업은 언제든지 가능하고 일단 유리창을 파괴하고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얼마든지 살아있는 학생들을 찾기만 하면 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봉주의 전국구 16화 “애당초 구조는 없었다” 11분 20초부터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podbay.fm/show/802819030/e/1398989497?autostart=1

      “… 조류야 세다고 하지만 조류가 세다는 건 조금 어려울 뿐이지 못한다는 그런 거에는 부합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데 조금 어려울 뿐이죠. 어차피 다가가서 침투를 해야 하는데… 어차피 마찬가집니다. 들어갈 때 조금 힘들 뿐이고…”

      전체적으로 조류는 셌지만, 구조작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 일단 강대영씨 인터뷰 부분은 “사고 첫날” 즉 16일이 아니지요. “19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용하신 부분의 질문은

        “그 당시 조류가 굉장히 빨랐다고 해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었던 상황은 아니였습니까? ”

        인데, 여기서 “그 당시” 란, 인터뷰를 보시면, 강대영씨가 첫번째 시신을 발견하자 언딘 측에서 양보하라하고 작업을 미룬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터뷰 처음부터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에 몇 시 쯤 이었습니까? 19일 새벽?
        [강대영/잠수부 : 새벽 4시 그 정도 됐을 겁니다.] ”

        라고 나오지요.

        그리고 링크해주신 정봉주 관련 부분도 17일이라고 나옵니다.
        17일은 날씨가 좋았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사고첫날인 16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 17일이 날씨가 좋았다고 기억했었는데,
          어제 방영된 추적 60분을 보다가 17일 오후 1시 30분경의 화면을 보니
          날씨와 파도가 너무 안좋길래,
          다시 검색 보니 17일날 날씨가 아주 안좋았었던 것 같습니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6891.html

          날씨 ‘비’, 풍속 ‘7~11m/s’, 파고 ‘0.5~1.1m’. 팽목항 대합실에서 예고하는 4월17일 아침 6시 날씨가 가족들을 불안하게 했다. 혼란스러운 가족들은 체육관과 팽목항 어디에서도 정확한 상황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해경이 민간 구조대의 현장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성난 가족들의 분노는 통제선을 넘고 있었다.

          한 민간 잠수부가 “해경이 막았다는 건 오해다. 반드시 구해낼 테니 믿어달라”며 가족을 달랬다. 그가 실종자 가족이 없는 곳에서 에 말했다. “현재 유속이 8노트다. 3노트 이상이면 잠수를 금지한다. 가족들의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잠수가 불가능한 상태다.” 생존자들이 보냈다는 문자메시지를 두고도 “물속에서는 전파가 안 통한다. 문자가 올 수 없다”고 했다.

          통곡의 배였다. 4월17일 아침 7시17분 실종자 가족 80여 명을 태운 배가 사고 현장을 향해 출발했다. 배에 올라 파도의 요동을 감각하자마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바다가 가둔 아들딸의 이름을 부르며 부모는 목 놓아 울었다. 7시25분께 갑자기 “회항하겠다”던 선장이 가족들의 항의를 받고 “다시 사고 현장으로 가겠다”고 방송했다. 가족들의 욕설이 엔진 소리를 뚫었다. 쇳덩이를 띄우는 바닷물보다 절망에서 솟는 눈물이 더 깊었다. 그들의 눈물은 염분보다 울분 때문에 짠 것인지도 몰랐다.

          강대영씨의 정봉주 인터뷰를 들어보면 17일 오후에 도착해서 이쁘게 엎어져 있어서 구조하기 좋았다, 유속이 세다고는 하나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다, 구조하기에 적격은 아니였지만 어렵더라도 할 수는 있었다는 것인데…

          아무튼 17일 날씨 부분은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아서 수정합니다…

    • 같은 정봉주의 전국구 16화 38:00분부터 들어보시면 유도라인(가이드라인) 설치가 그렇게 어려울 것이 없는데 왜 계속 핑계를 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 17일날은 님의 말씀처럼 가이드라인 설치가 어려울 것이 없었다는 말이 맞지 싶습니다.
        만약 이때 SSU가 투입됐더라면, 분명 설치했을텐데,
        처음에는 해경 통제 상황에서 해경이 막아서 SSU도 작업하지 못했으니….
        하지만 SSU가 투입된 이후의 상황에서는 어려울 것이 없는데도 안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좀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지만 인터뷰가 아닌 국립해양조사원이 측정한 내용이 있어서 답글을 달아봅니다.

      http://news.jtbc.joins.com/html/970/NB10477970.html

      본문에서 첫째날에 대한 리포트를 보시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사고 당일 오후 1시 20분, 유속은 초당 최저 0.02m까지 내려갔다가 오후 5시쯤 0.8m로 빨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저녁 7시 40분, 초당 0.04m로 유속이 느려집니다.
      ……
      사고 나흘째, 민간잠수사가 첫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 유속과 비교해 봤습니다.
      민간잠수사가 입수했던 19일 새벽 3시반, 유속은 초당 0.07m였고 시신 발견 당시 유속은 초당 0.3m였습니다.
      초당 유속 0.3m까지는 수중 수색이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이걸 봐서는 첫째날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해경이 정조시간을 잘못 계산했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혹시 그 때문에 작업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 해경이 정조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점이 가장 컸지 싶습니다.
        기사에서도 나오듯이 유속이 가장 센 시기를 정조라고 알고 있었으니…
        그런데 최초 가이드라인 설치가 18일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이 설치된 상태에서 작업하는 19일과 가이드라인이 설치되기 전인 16일을 비교하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사 내부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정조시간에 대해 기사 내부적으로 최초에 해경이 알고 있던 정조시간과 실제 정조시간을 혼동하는 실수를 한 것 같은데요.

        기사에 의하면 17일의 사고해역 실제 정조 시간은 04시 2분, 09시 27분 등입니다.

        //
        A. [고명석/사고대책본부 대변인 (4월 17일) : 정조가 07시, 낮 12시 45분, 저녁 7시 전후가 되기 때문에 정조 시간에 집중적으로 수색을 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맹골수도의 정조 시간은 오전 4시 2분과 9시 27분 등이었습니다.

        구조팀이 정조 시간이라고 밝힌 때는 오히려 조류의 흐름이 센 최강조류 시간이었습니다.
        //

        이는 국립해양조사원의 자료
        http://www.khoa.go.kr/popup_20140421_01.jsp 와 일치합니다.
        즉, 기사의 지적이 맞습니다.

      • 그런데, 16일에 대한 다음 부분은 이상합니다. (글의 순서는 B-A 순)

        //
        B. “사고 당일 오후 1시 20분, 유속은 초당 최저 0.02m까지 내려갔다가 오후 5시쯤 0.8m로 빨라집니다.

        그리고 다시 저녁 7시 40분, 초당 0.04m로 유속이 느려집니다.

        물살이 멈추는 정조시간입니다.
        //

        그러나, http://www.khoa.go.kr/popup_20140421_01.jsp 에 의하면,

        16일 정조시간은 03:12, 08:38, 15:03, 20:58 이고
        최대 유속은 18:15에 2.6m/s 이기 때문에,
        기사의 해당 부분은 잘못이며,
        기사에서 언급되는 16일 정조시간이 A의 17일자 고명석/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의 발언 내용과 비슷한 시간대임을 볼 때,
        기사 작성자가 제시한 자료는 맹골수도 기준이 아니며 고명석씨가 알고 있던 지역과 비슷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리고 현장에 PTC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하셨는데,
    제가 알기로는 청해진함에 이것이 구비되어있고, 바로 출동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검색해봤더니 이런 기사도 있군요. http://news1.kr/articles/1637896
    다만 있더라도 투입을 안한 것인데, 그것은 유속 때문이라고 밝히긴 했지요.
    제 생각에는, 이것을 상시에 투입하지는 않았지만 요구호자가 발견된 비상시에는 투입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는 겁니다. 물론 알 수는 없지요. 하지만 청해진함이 있었기 때문에, 말씀처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고 볼 수만도 없다는 거지요.

    그리고, 진도에서 무조건 잠수벨을 쓸 수 없다는 말은 틀렸을 수도 있겠지만,
    이종인씨의 벨이 잠수에 성공한 것은, 그가 추를 달고 개조를 했기 때문이지, 일반적으로는 bell 을 유속이 강한 곳에서 쓰지 않는 것이 안전하겠지요. 따라서 이종인씨의 그 개조한 wet bell 은 테스트가 필요한데, 이것이 잘 되어 있는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첫번째에는 공기튜브가 꼬여서 잘리는 사고도 있었지요

    • 강대영 잠수사 인터뷰를 제가 3군데 이상 본 것 같은데 관심 있으면 조금 더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정봉주의 전국구에서 비교적 자세히 인터뷰해서 이런저런 내용을 참고하실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해군의 PTC가 투입될 계획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어떤 장비도 순식간에 투입하진 못합니다. 인원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조류가 약해서 투입이 가능한 시기였다면 일단 물속에 집어넣고 언제 발견될지 모를 생존자를 대비하는게 맞죠.

      상식적으로 잠수사가 생존자 발견하고, 본부에 알려서 그때부터 PTC를 준비한다면 몇시간이나 필요할까요?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 설치하는 과정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PTC면 혼합기체를 사용할테니 그쪽으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할거구요.

      그리고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이 급하게 개조를 했다(그래서 테스트가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보시는데 저는 금시초문이네요. 관련된 자료가 있으면 소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조선쪽에 근무하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넷상에 올라오는데, 초반에 크레인 왔을 때 1시간 정도 작업하면 완전침몰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검색만 해보셔도 꽤 나옵니다. 강대영 잠수사도 같은 내용을 언급했었구요.

      해경이 초기에 해군 정예요원 19명 투입을 막았다는 내용은 제가 따로 찾아드리지 않겠습니다. (제 글에 링크가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공기통 스쿠버는 30m에서 10~15분 활동이 한계이고, 후까는 줄 길이와 꼬임 때문에 활동반경이 제한되니 초기에 생존자를 구하려면 재호흡기를 사용하는 다이버가 필수였습니다.

      일반잠수사가 10분씩 작업하고 교대하면 뒤에 투입된 요원들은 당연히 효율이 떨어집니다. 재호흡기 다이버가 연속으로 1~2시간 작업하면서 생존자를 찾았다면 과연 불가능했을까요? 침몰 직후라면 특별히 감압하지 않고 호흡기 물려서 데리고 나올 수도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유감스러운데, 애당초 PTC든 재호흡기 다이버 등 강대영 잠수사 말대로 도끼로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든 초반에 대응했으면 단 한 명이라도 구조를 할 수 없었을까요?

      • PTC를 준비하는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PTC를 운용할 때 굳이 혼합기체를 사용할 이유는 없습니다.
        PTC는 이동장치로서 사용 할 수 있으므로, 예컨데 40m 에서 요구조자를 발견했다면, 5기압에 맞춰서 PTC 내부 기압을 맞춘 이후 투하하여 요구조자를 데리고, 5 기압으로 맞춘 선내 감압실로 그대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PTC를 이용한 포화잠수에 있어서는 PTC에서 미리 가압을 한 상태에서 그대로 일정 수심으로 PTC를 타고 잠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이 급하게 개조를 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은 개조를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전부터 개조해서 가지고 있던 것은 알고 있으나, 그가 유속이 센 곳에서 “인명구조”를 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종인씨 경력 문서 상으로는 그러합니다.

        크레인 도착은 사고 이틀후인 18일인데 만약 그렇게 가능했다면 했으면 좋았겠지요.

        저도 재호흡기를 쓰는 것이 어땠을까 합니다.
        그것이 wet bell 보다 더 나은 방법이라 보구요. 가격이 비싸긴 하지만 wet bell 운용에 들어간다는 1억 5천의 자금을 생각한다면, 물론 이종인씨의 돈이긴 합니다만 재호흡기가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강대영씨 말씀처럼 17일날 좀 더 노력했더라면 기적적으로 구조자가 있었을런지도 모를 일이겠지요.

        • 제 생각에도.. 재호흡기도 물론 전문인력과 운용경비가 필요하겠습니다만, 어차피 해군부대원들은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왜 해경이 못 들어가게 막은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해군 PTC 스펙이 말씀하신 바와 같다면 구조를 위해서는 이종인씨의 민간 다이빙벨보다 훨씬 더 유용했겠네요. 감압상태에서 바로 감압실로 이송할 수 있다니 해난구조 자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비 같습니다.

          과연 쓸 수 있었는데도 쓰지 않았느냐, 쓸 수가 없는(혹은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느냐는 의문입니다만, 저는 해군에서 유속 때문에 PTC를 투입할 수 없었다고 발표한 부분에서 의심이 가네요..

          준비완료하고 대기했는데, 생존자를 막상 발견하니 그 당시의 유속에 세서 투입하지 못했다 – 이런 식이라면 이해가 갑니다만, 아예 현장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 장비라 쓸 수 없었다는 선언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곱씹을수록 분노와 좌절감이 느껴지네요.. 개인적으로는 얼마나 정부의 구조작전이 원활하지 않았으면 민간인 이종인씨까지 이슈가 되었으며, 그런 노력까지도 바보취급을 하는 세태가 매우 불만족스럽습니다.

          구조효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죠..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붓고도 구조가 불가능했다면 수긍하겠습니다만..

  • ㅍㅍㅅㅅ에도 이 글이 있음을 보고 다시 한 번 글을 보다보니,
    이 부분만큼은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어 다시 한번 댓글을 남깁니다.
    (같은 내용을 ㅍㅍㅅㅅ에도 남겼습니다.)

    ” 세월호에 에어포켓이 존재했고 그 속에 생존자가 있었다면,(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이를 볼 때 추워서 사망한 이가 있었다는 것은 초기에 에어포켓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이”로 사인이 밝혀진 사람은 없습니다.

    초기에 그런 루머가 있었으나 부검도 하지 않고 단순 검안으로 사인을 판단할 수는 없으므로 루머입니다. 또한 이것과 관련해서 익사가 아닌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이라면 엄청난 파장일텐데도 부검 결과가 저체온증이라는 기사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체온으로 사망한 이가 있었다.” 는 부분은 문제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를 근거로 추론하여 “초기에 에어포켓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는 부분또한 그 근거가 잘못이기에 잘못된 추론 입니다.

    물론 에어포켓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다른 이유로 에어포켓이 초기에 존재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뱃머리가 수면 위로 나와있었다는 것을 이유로 에어포켓의 가능성을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뱃머리가 수면 위로 나와있었던 주요 이유는 ballast 의 빈공간 때문이며 군함과 달리 수밀격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세월호에서 에어포켓은 사실상 기대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http://www.hani.co.kr/arti/soc
    따라서 에어포켓의 존재 여부도 그리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답변이 늦었습니다. 세월호 초기에 발견된 사망자 중에 “이다운 학생”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고, 배 밖에서 발견되었으나 이를 선내에서 발견한 것으로 제가 잘못 이해해서 본문에 오류가 생겼네요.

      여러개의 글을 소개하기 어려우니, 정리된 링크 하나만 아래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http://m.clien.net/cs3/board?bo_table=park&bo_style=view&wr_id=28684777

      ㅍㅍㅅㅅ에도 정정 댓글을 남깁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댓글도 같이 보신다는 전제 하에서 본문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두겠습니다.

  • cmas 강사이자 한때 한때 산업잠수사로 일했습니다
    ptc도 다이빙벨도 셋팅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심지어 ssds(헬멧. 후카등)도 꽤 시간이 걸리고 재호흡기 역시 바로 투입은 어렵습니다
    즉시 투입 가능한것은 스쿠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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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콜롬비아와 인도네시아 발리에 살았던 여행자. 지금은 영상을 만드는 일을 본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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