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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한국문화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 (문화적 다양성의 관점)

2010/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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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사이트 자유게시판에서 한국어를 사용해서 무슨 장점이 있냐고, 그냥 영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좀 충격적인 논리의 글을 읽었습니다. 한동안 좀 멍했는데, 조금 생각이 정리된 것 같아 이 문제에 대해 제 의견을 피력해봅니다.

간단하게 팩트로만 이야기해보자면, 최소한 2개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사람들은 정보와 문화면에서 1개국어만 구사하는 사람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제 경우 한국어 모국어에다 중상 레벨의 영어와 스페인어를 구사하는데, 국제사회에서 영어와 스페인어의 위상이 훨씬 크다고 해서 한국어가 쓸모없느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언어는 각 지역사람들의 생활, 사고,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세계 IT기술의 원천은 미국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어로 된 IT정보를 찾는 것보다 영어로 된 정보를 찾으면 훨씬 빠르고 정확하지 않느냐? 뭐 하러 한국어로 번역된 정보를 찾느냐?” 이런 식으로 접근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만, 최소한 제 경우는 웬만한 IT정보도 한국것을 먼저 찾아봅니다.

최신소식은 영어정보가 빠를지 모르지만, 한국문화의 특수성(치열한 경쟁과 속도전식 사회분위기)으로 인해 일단 같은 주제를 다룬 정보의 질은 한국어로 쓰여진 것들이 대부분 영어정보에 대해 월등히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어만 구사할 수 있는 사람과, 영어도 구사하면서 모국어 하나를 더 구사할 수 있는 사람중 누가 더 경쟁력이 높을까요? 언어권에 따라 본인이 커버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히 다개국어 구사자의 경쟁력이 훨씬 높을 겁니다. (최근까지 한국, 중국, 인도 등 IT업계 종사자들이 미국등지에서 두각을 나타낸 데에도 이런 이유가 상당히 작용했을 거라고 봅니다.)

스페인어의 경우 26개국 4억 5천만의 인구가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어도 남북한과 동포들 합치면 8천만 정도 되지 않던가요? 아까 읽은 글의 논리 그대로만 적용해봐도, 미국에서 스페인어권 시장을 뚫으려면 영어만 하는 사람보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같이 구사하는 사람의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남부의 경우 백인일지라도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취업이 힘들다고 하죠.)

제가 남미에 여행과 이민 합쳐 4년 넘는 시간을 있었는데, 심지어 같은 역사적 배경과 같은 언어권인 나라들 사이에서도 확연히 구별되는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하물며 다른 언어권 사이의 문화적 차이란 매우 상이하며, 오히려 글로벌시대일수록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본인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싶네요.

론리플래닛 한국편 저자가 이런 요지의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기억나는대로 적어보겠습니다) “한국사람들은 서구문화가 들어오면 전통이 파괴될까봐 걱정한다. 예를 들어 침대문화가 소개되면 온돌이 사라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온돌이라는 옵션 위에 침대라는 옵션이 추가되기 때문에 문화적 선택권이 넓어진다. 이런 다른 문화와의 교류로 인해 문화는 풍요로와진다.”

이것이 각기 다른 문화들이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한국어가 국제사회에서 별 효용성이 없어보인다는 이유로 그냥 영어를 모국어로 쓰자는 주장은, 마치 온돌문화가 침대문화보다 효율적이지 못하니 없애버리고 침대만 쓰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아보입니다(혹은 침대를 없애고 온돌만 쓰자는 주장 역시 같은 맥락이 되겠죠). 온돌과 침대가 함께 공존하고 취사선택할 수 있을때 문화가 더 풍요로와질 수 있는게 아닐까요.

(사족으로, 해외여행이나 유학중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방들이 갑자기 모국어를 사용하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바보가 되는 – 혹은 상대방을 바보로 만드는 – 상황을 자주 접했던 기억도 나네요.)